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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광고&/웹&모바일

짧게 살펴보는 국내 포털과 검색광고 역사 1편, 네이버는 어떻게 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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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쓰는 사람 중, 하루에 한번이라도 네이버에 접속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벌써 스마트폰이 없으면 생활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생활 면면에 인터넷이 밀착되어 있는데, 아마도 네이버에 접속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이 네이버의 시작으로 검색광고의 역사를 짧게 살펴 보겠습니다.



21,000,000

33,000,000

1,000,000,000

이 3가지 숫자는 어떤 걸 의미하는걸까?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한 살 차이라고 무시하고 다닐 나이였던 1994년에 라이코스, 야후, 웹크롤러 등의 서비스가 시작 되었는데, 이 서비스들은 초기에 웹 검색엔진의 서비스 형태로 출발 하였습니다. 그러다 검색 기능만으로는 지속성장 할 수 있는 cash cow를 만들지 못 했기 때문에 검색 외에 사용자들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신규 서비스, 예를 들어 메일, 쇼핑, 뉴스 등등의 콘텐츠가 추가 되면서 지금의 소위 포털 ( Portal : 관문 )로 변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일일 방문자수

회원수

일일 페이지뷰

11년 기준 네이버 방문자 스팩 입니다.




자, 그러다가 97년에 IMF가 터진 바로 그 해에, "Don't be evil, You can make money without doing evil" 라는 기업 철학을 가지고 구글이 창업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바로 다음 해 98년에 아주 익숙한 이름 오버추어의 전신 고투닷컴이 창업하였습니다.








2001년, 고투닷컴은 오버추어로 Born Again 하는데, 사실 오버추어는 진작에 야후에 인수되어 Yahoo! Search Marketing이라는 이름으로 물건너에서는 불리우고 있었습니다. 단,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유독 오버추어라는 이름이 유지 되었는데, 오버추어는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업계 사이에서는 오빠추워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 이 얘기는 왜? )





오버추어는 최초로 CPC ( 클릭당 과금 방식의 종량제 광고 / cost per click ) 상품을 론칭해서 대 히트를 시키는데 2001년 영어권 온라인 검색 점유율 85%라는 시장 지배력을 가지게 됩니다. 독자적인 검색 서비스를 고집하지 않고 기존 검색엔진들과의 제휴에 주력을 하며 파이를 키워 갔던 것이 유효하게 먹혔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그러니까 다들 월드컵으로 한창 난리 났는데 군생활 말년을 보내고 있는 바로 그 때 오버추어와 구글이 특허분쟁이 생깁니다. 오버추어의 스폰서링크 CPC vs 구글 애드워즈의 사용자반응 CPC로 송사가 생겨버리죠. 그렇게 송사를 질질 끌고 가다가 야후에서 오버추어의 포텐을 보고 전격적으로 인수하면서 송사는 야후 vs 구글로 바뀌게 되었고, 2004년에 구글은 야후에 270만주를 양도하면서 (약 3.6억 달러) 오버추어의 특허기술에 대한 사용권을 취득하게 되는 모양새로 마무리 되고 드디어 국내에 본격적인 외국 검색광고 서비스 사업자가 들어오게 됩니다.


바로 그 해 2004년 7월! 네이버 스폰서링크가 출시 됩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국내 포털 검색광고 시장에서 말 많고 탈 많았던 외국 검색광고 서비스가 드디어 국내 포털에 탑재 되기 시작 합니다.


그럼 네이버의 초기 모습은 어떠 했을까요? 네이버는 98년, 삼성 TFT에서 시작 했다고 봐야 하는데, 그 모습은 이러 했습니다.





초창기 네이버의 BI는 태권도 브이를 연상시키는 비주얼과 함께 갱장히 어색한 노란색의 칼라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해인 99년도, 제가 비둘기 학번이 되던 그 해에 네이버는 정식적으로 출범하게 되고 포털사업자로의 사업을 시작 하게 됩니다.




이제 좀 네이버다운 모습이 갖춰 지고 있습니다. 왠지 저 모자를 보면 전지현이 계속 생각 나네요. n세대를 한창 강조하던 조성모와 이정현이 생각나는 건 저뿐인가요. 뭐 어찌 되엇든 이 때의 네이버를 보면 텍스트 위주의 디렉토리 빼고는 별 다른 메뉴나 콘텐츠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잘 보면 쥬니어 네이버는 저 때부터 있어 왔습니다. 해를 거듭할 수록 네이버는 세련되어지는데 2004년에 검색광고를 탑재 하기 전까지는 유아적 수준의 배너 정도로 이루어진 광고 인벤토리가 보여 집니다.








 현재 네이버의 초기 배너인 타임보드와 브랜딩보드의 구좌가 윤곽이 잡히고 있습니다. 또한 한게임도 이때부터 전면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2001년에 주목할 것은 네이버 자체 검색 키워드 광고가 이 해 5월에 론칭을 하게 됐고 그 다음해 2002년 10월, 네이버를 폭발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리기 시작한 서비스 지식인이 공개 되었습니다. 03년도에는 계속해서 카페와 블로그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네이버는 빠르게 성장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해를 기점으로 해서 국내 인터넷 지형은 네이버에 종속되는 출발점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 말아톤이 한창 인기 있을 때만 하더라도 로그인 입력 폼이 좌측상단에 있었는데 09년도에 접어 들면서 로그인 폼은 우측 상단으로 바뀌고, 메인페이지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 합니다. 뉴스캐스트가 메인에 자리를 잡기 시작 하게 되었죠.. 현재는 아니지만 한 때는 뉴스캐스트에 올리는 뉴스기사를 돈만 주면 띄울 수 있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네이버로 편중 되고 있는데, 다시 오빠추워로 돌아가자면 오빠추워는 국내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본격적으로 광고대행 시장을 만들어 나갔고 검색광고 대행사들이 생겨나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국내 온라인 검색광고 대행사의 전통을 따져 봤자 10년 조금 넘으면 오래된 역사?!를 지닌 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클릭당 과금 방식의 오버추어의 광고 순위 결정 방식은 짧은 시간만에 갱장히 비싼 입찰금액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무분별한 입찰 경쟁, 경쟁사끼리의 부정클릭, 대책없는 광고비 등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또한 검색광고 대행사는 오버추어의 등급제도에 묶이면서 매출 규모별로 나뉘게 됩니다. 그래서 콜영업을 하는 광고대행사의 신입사원들의 전화로 아웃바운드 영업을 하게 되는 형태가 시장 전반에 자리잡게 되어 집니다.





2007년 오버추어는 파나마라는 새로운 광고 관리 플랫폼을 출시 하면서 클릭율이 높은 T&D를 자동으로 노출 시켜주는 기술을 탑재 하면서 UI를 대폭 개선 시키는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네이버의 성장과 구글의 견제에 아름아름 비실대다가 2011년에 네이버와 완전 결별, 사실은 네이버로부터 차였다고 봐야 합니다. 네이버의 덩치에 더 이상 광고 수익을 오버추어와 나눌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대략 2~3년 전부터 네이버는 자체 광고 플랫폼을 준비 했다고 봐야 하고, 결국 올해 1월을 기점으로 오버추어는 국내 시장에서 완전 철수를 하게 됩니다. 


06년 시절 오버추어 담당자였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서버에 있는 관리 플랫폼으로 계정을 만지다보면 여간 느린 것이 아니라서 모니터를 창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죠..


어쨌거나 저쨌거나 사실 구글과 다음, 네이트의 여러 견제 과정들 ( 별 영향력 없는.. )과 오버추어가 빠지고 나서 네이버와 다음, 양자구도로 재편 된 국내 검색광고 시장의 지형은 네이버천하로 통일 되어 버리는 결과가 되었는데,,,, 


2편은 다음의 메인페이지 변천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야기는 제목과 상관 없이 제 맘대로 흘러갑니다. 낄낄. 다만 틀린 부분이 있으면 과감한 지적질 부탁 드립니다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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