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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광고&/웹&모바일

짧게 살펴보는 국내 포털과 검색광고 역사 2편, 다음은 어떻게 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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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움직이는 힘 다음.

 

뭔가 갱장히 민망한 이 copy 1999년 다음의 브랜드 인쇄광고의 헤드 copy가 되겠습니다.

동년 다음이 주력으로 밀고 있던 기업 slogan은 딱히 없는데 주력으로 내세우던 keyword는 있습니다. 한국과 경쟁사명 XX 입니.




1999, 그러니까 내가 이제 막 20 99학번 신입이 되었다고 한창 당구, 스타크래프트, 시원소주 에 빠져 있을 때 다음은 국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선도자격 위치에 있었는데 현재의 공룡포털 네이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인쇄광고가 있는데 대충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은 1997 5월 서비스를 시작 했는데, 1년하고 6개월 만에 국내 인터넷 메일 서비스로는 처음으로 100만 회원을 돌파 하면서 삼성 SDS의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한메일넷 홈페이지에 검색서비스를 시작 하게 됩니다. 한 해를 거슬러 올라가 1998년엔 당시 국내 인터넷 사용자를 약 400만 명 정도로 추산 한다고 하는데 그때 당시 4명 중 1명이 한메일넷 회원 이었습니다. 한메일넷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네티즌들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였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전자메일 서비스업체는 전세계를 통틀어서 7개에 불과 합니다






1999년 다음은 한메일넷에서 다음으로 브랜드명을 변경하게 됩니다. 네이버가 지식인으로 유명세를 탔다면 다음은 카페를 통해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99 5월 다음은 다음 카페를 론칭하게 됩니다. 또 그러면서 커뮤니티 서비스인 마이칼럼, 미즈넷 등 다양한 서비스를 내세우며 원스탑 포털 (One-Stop Portal) 다음을 새롭게 단장하게 되고 그 해 8월 코스닥에 등록하게 됩니다.

 


2000년이 되면서 다음은 현재의 NEXT + 多音 의미를 가진 다음 CI로 변경 하게 되는군요




2001년부터 본격적인 광고 인벤토리가 자리를 잡아가고 마켓 플레이스 ( 사고팔고 ), 다음 쇼핑, 주식거래 등등 다양한 온라인 전자상거래 모델을 화면 중앙에 배치하면서 사용자의 편익을 증대 시킵니다.


 




그러다가 2003 1월 다음은 드디어 약을 빨게 되는데 오버추어와 P4P (Pay-for-Performance)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간 취약했던 사업분야를 보강하고 수익사업을 강화 하는데 이는 다시 로그인 회원을 대상으로 개인화 된 서비스를 선보이게 되는  어쨌거나 좋은 시도를 만들게끔 하는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국내 최초로 로그인을 하면 이용자의 나이와 성별에 따라 콘텐츠를 다르게 편집해서 보여 주었던 것이죠. 어찌 보면 UX 포털 최초의 시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 태클 ㄴㄴ )

 

그러면서 다음은 본격적인 TVC 캠페인을 시작 하게 되는데 지금은 본격 연기자 인생을 걸어 가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 임창정씨를 시작으로 실시간 검색정보 기능을 전파하는 광고를 뿌리게 됩니다.


 




 


여기엔 고인이 된 故 장진영님도 보이네요. 그렇게 다음은 이때까지만 해도 잘 나갔었는데 2006년 신의 한 수(?)를 두게 됩니다. 다음은 오버추어와 결별을 선언하고 구글과 검색 제휴를 맺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음은 초반 주식시장에서 반짝 후광효과를 좀 맛 보다가 결국 포털과 검색서비스사업자간의 짝짓기 싸움에서 밀려 버립니다. 그러다 다시 3년 뒤 2009년 말에 다음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오빠추워에게 가서 안아달라고 손을 잡게 됩니다. 뭐 어쨌거나 현재 구글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SA파트는 손을 접었고 오버추어는 철수한 마당에 다음도 자체 광고 플랫폼을 출시하면서 현재는 모바일 아담 플랫폼까지 출시를 한 상태 입니다.





초창기 인터넷을 얘기 할 때 한국을 얘기하고 야후를 까부수며 이순신장군님을 꺼내던 그 다음이 지금은 네이버에 밀려 좀처럼 어깨를 펴지 못 하고 있습니다만, 하루 빨리 네이버의 라인처럼 다음도 지속성장 할 수 있는 모멘텀을 찾아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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