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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아카데미/인문학메모

1800~1900년대 초 동아시아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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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동아시아 흐름..

 

영국이 중국(청나라)과 무역을 하며 적자를 거듭. 영국은 중국에게서 차(tea)나 자기 등 많은 물자를 수입하는데 중국은 그 당시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써 딱히 영국의 물자를 수입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며 영국은 모직을 주로 수출하려 했으나 중국은 면화라던지 비단 등이 있어서 영국이 아편으로 무역하기 시작 함.

 

이 아편을 계기로 영국과 중국의 1차 아편전쟁이(1840년) 생기는데 중국은 영국에게 참패를 당하고 일부 서양식 무기 등 부분적 근대화를 더디게 개방하게 됨. (이때 난징조약을 맺음.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는) 그러나 중국은 원체 뿌리깊은 중화사상과 패권국가라는 사상이 강하여 영국에게 패한 것을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고 함. 

 

그 당시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이(1853~77년 전후) 있었느데 지방분권 체제의 막부체제가 없어 지고 유신체제가 생기면서 서방 열국과 친화적인 외교를 펼치며 많은 엘리트들이 서방에서 근대화 문물을 배우고 전면개방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여 빠르게 근대화를 이루게 되고 선진자본주의도 받아들이게 됨.

 

그리고 얼마 후 조선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1894년) 생기는데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반봉건, 반외세 운동이 벌어졌고 조선 정부가 청나라에게 이 운동좀 잡아 달라고 헬프를 쳤는데 이때 청과 일본이 둘이 서로 조약을 맺으며 같이 들어오고 같이 철수하자고 약속을 함. 청과 일이 개입하여 결국 동학농민운동의 지도부 대부분 사형당하고 실패로 끝났으나 이때 청은 철수하려고 했는데 일본은 이를 계기로 내정간섭이 극도로 심해 짐.

 

이에 청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세력이 강해지자 조선의 지배권을 가지고 생긴게 바로 청일전쟁임 (동학농민 발발 같은 해인 1894년도 발생). 아편전쟁에서 중국은 반성없이 아직도 말타고 활이나 쏘는 병법이나 구식 무기들로 전쟁을 치뤘다면 일본은 빠른 근대화로 신식 무기와 병법으로 청을 제압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며 조선에게는 청나라로 부터 조선을 해방시켜줬다는 명분을 가지게 되었음. 허나 실제로 조선은 독립국가였기 때문에 그저 명분에 불과 했었음. 그리고 이때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게 됨. (이때 일본은 전쟁 승리에 대한 배당금으로 2억냥을 청으로 부터 받는데 2억냥은 그 당시 일본의 1년 세수의 약 4배였다고)

 

위기를 느낀 고종과 명성황후는 러시아에 친화적인 외교를 펼쳤으며 만주와 요동반도를 러시아가 개입하여 영토를 빼앗아 가자 일본은 조선을 교두보로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러일전쟁을(1904년) 일으키게 됐고 이때 다시 일본이 승리하게 됨. 러일전쟁의 발발이 인천에서 시작 됐다고 하며 러시아는 극동까지 7천 키로 정도의 거리로 물자 수송이 어려워 전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함. 허나 일본은 이미 근대화를 빠르게 도입 할 때 영국과 미국 등 서구열강과 친화 외교를 통해 러일전쟁은 러시아 내부에서는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이었으며 일본은 이 두나라를 대리했을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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