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아카데미/미학, 철학사와 함께

6강.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과 고대미학 (파르메니데스, 제논)

반응형

파르메니데스 복습

- 논리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상정해야 비로소 진리 탐구가 가능함

- 진짜 존재하는 것이란 변하지 않는 것

- 있다/없다의 존재 문제를 오로지 논리와 사유의 차원으로 해결하려 함(즉 존재와 사유의 일치)

- 존재는 생성되지 않고 소멸되지도 않으며 온전한 하나라서 나눠지지 않고 변화하지 않아 흔들림이 없는 것

- 운동이나 생성은 환상일 뿐 (시간성 배제, 감각적 인식 부정)

-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없는 것은 말할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 세상엔 있음만 존재하며 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하지 않는 온전한 하나다(일자)

- 있음이 여럿 존재하려면 있음의 사이에 없음이 있어야 하는데 없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존재와 사유의 일치 : 외부의 사태와 인간의 내면은 같이 간다는 사상.. 후대에 관념론으로 계승 발전 됨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에 대한 판별 근거를 순수한 생각, 즉 감각적 내용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사유의 순수한 논리라고 믿었다. 이 양반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 뿐이다. 바꿔 말하면 생각되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유와 존재는 같이 가는 것이 된다. 이것은 즉 있다(존재)는 이다(사유)와 동일시 되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이 꽃은 붉다(존재)는 말은 이 꽃은 붉은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는 뜻이고 붉은 상태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사유)을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이 가능하려면 그 대상이 변화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 양반에게 변화는 진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저 감각적 환상일 뿐인 것이고 참다운 존재란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긴 결과이다. 감각적 경험의 세계는 진짜가 아닌 그림자에 불과하고 순수 사유에 의해서 파악되는 영원불변의 세계가 참된 것이라는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결론이다 (이게 바로 후대에 플라톤의 사상과 연결된다)

 

이 양반이 동원한 논리는 세가지다. 1번은 동일률. A는 A다.  2번은 모순률. A는 A아닌 것이 아니다.  3번은 배중률. 모든 것은 A든가 A가 아닌 것이며 중간은 없다. 라는 것이다. 이를 풀어보면.. 존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오로지 존재하지 않는 것 밖에 없는데(배중률) 이는 존재하는 것 외에 또 다른 것이 존재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모순된다(모순률)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존재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계속 썰을 풀어보면 존재하는 것은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존재하는 것이 생겨난다면 존재하는 것이 원인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원인이여야 하는데 존재하는 것에서 생겨났다면 이는 인과가 아니라 동일한 것이된다. 그리고 만약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먼저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에 원인이 될 수가 없다. 하나 더 해보자면 존재하는 것이 만약 변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변해야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즉 없는 것) 변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된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것이 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존재란 변하지 않고 원래부터 있었으며 하나이고 나눠지지도 않으며 소멸하지도 않는 것이 되게 된다. 즉, "일자"라고 주장하게 된다. 결국 존재하는 것이 하나라는 것은 피타고라스를 부정하게 되는 것으로 연결이 된다. 

 

참고로 변화와 생성을 원질로 봤단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감각적 사실만을 강조한 결과이다. 다분히 유물론적 입장인데 관념론 철학에 밀려 주류에서 벗아나 있다가 후대에 니체에 의해서 부활하고 재조명 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발전되게 된다. 사유를 통해서만 존재를 규정하고 고정불변을 주장한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존재를 파악하는 이성의 입장만을 강조한 결과이다. 비교하자면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이데아로(being)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와 생성은 현상세계(becoming)로 비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피타고라스의 수학정신과 파르메니데스의 관념 우위의 존재론은 서양철학을 떠받쳐 온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게된다.

 

 

 

제논 BC 495~430?

엘레아학파 철학자로 파르메니데스의 친구이자 제자이다. 운동을 부정한 제논의 역설로 유명하다.

 

날아가고 있는 화살은 정지해있다.. 날아가는 화살의 매 순간순간 찰나는 모두 정지해있기 때문. 결국 화살은 정지해 있는 것임.. 그리고 화살은 과녁에 도달하지 못 한다. 왜냐? 과녁까지 가기 위한 중간 지점을 통과해야 하고 또 그 길이의 중간지점, 또 중간지점, 또 중간지점... 무수한 중간지점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유한한 시간에서 무한한 중간지점을 통과할 수 없어서 화살은 과녁까지 못 한다는 논리.. 마지막으로 거북이와 아킬레스의 달리기도 화살이 과녁까지 가지 못 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로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뒤에서 출발하는데 거북이와 처음부터 벌어졌던 그 거리는 무한한 중간 지점을 가지고 또 거북이는 그 사이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기 때문에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이기지 못한다는 역설을 주장했다. 이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에 대한 해설을 옹호하고 운동과 변화를 부정하기 위한 역설을 고안해서 설명한 것이다.

 

 

 

교수님 짜투리

- 순수사유(noesis) -> 나중에 이데아로 연결된다 , 추론(dianoia)

- 충족이유율 : 충족시킬만한 이유는 항상 있다는 얘기

- 헤겔의 정신을 극명히 보여주는 한 마디. 정신은 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이며 비가시적인 것이 가식적인 것이 되고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이다라고 말하는 것. 관념론의 극치다..

- 오기 : 춘추전국 시대 오기는 체구가 작고 외소했으나 독종이었는데 싸움에 지면 매일 찾아가 다시 싸우자는 그런 사람이었음. 헌데 다른 나라의 임금에게 눈에 띄여 관직에 올랐고 기득권세력을 개혁하는 제도를 펼쳤다가 역모에 휘말려 죽게됨. 헌데 그냥 죽을 수는 없어 죽은 왕의 시체에 화살을 맞으면서 끝까지 걸어가 왕의 시체에 자기 몸을 뉘이고 화살을 맞으며 죽었음. 그 와중에 왕의 시체에도 화살이 꽂히게 되었고 왕의 시신을 훼손시키는 자는 3대를 멸하는 국법이 있었던 관계로 후대에 역모에 동참했던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됨, 즉 죽는 순간에도 병법으로 죽음을 맞이하여 오기를 죽인 기득권에게 복수를 가하게 된 것이었음. 오기있다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오는 것임..

 

 

내 생각

-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 증명은 순환참조오류가 명백하다.. 애초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구분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면 결국 모든 논리는 자기 전제에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음. 이 무슨 븅신같은 오류인지... 우리가 흔히 엑셀작업을 많이 하다보면 참조 테이블을 외부에서 가져 오지 않고 자기 산식에서 참조시키는 경우가 종종있는데 그럴 때 발생하는 오류와 같은 듯 하다.

-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인 존재가 이데아로 발전하는 대목에서는 그냥 둘 다 참... 어떤면에선 참으로 어리석어 보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