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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아카데미/미학, 철학사와 함께

16강.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미학. 예술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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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리스토텔레스 마지막 편.. 아,, 만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여!





시의 생명, 은유(Metaphor)

아토스가 후천적인 숙련만 인정하고 타고난 재능(Techne)의 필요성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예술에 필요한 일반적 능력 외에 작시에 요구되는 특수한 재능으로 아토스는 은유 구사 능력을 꼽는다. 아토스는 시학 17장에서 시의 생명은 은유이고 은유 구사능력은 천재의 징표라고 했다. 이때의  천재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신이 잠시 들어와 있는 신비한 상태라고 이해하는전토적인 엔테오스(entheos) 개념이라기 보다는 선천적인 능력이 내재된 인물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은유라는 말 메타포(Metaphor)는 Meta(~뒤의, ~이후, ~너머)와 Pherein(가져가다)이 합쳐진 메타페레인 Metapherein(어떤 것의 자리에 다른 것을 옮겨놓다)에서 유래했다. 그는 수사학에서 은유의 본질을 유비라고 주장했다. 결국 은유는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능력. 즉 유사성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은유는 유사성에서 의해 성립되는 것이지 동일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가리켜 일종의 수수께끼라고 규정했다.

은유는 독자로 하여금 대상 간의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닮은 점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줌으로서 그에 따른 인식적 확장과 예술적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은유가 되기 위해서는 하려는 말과 빗댄 말 사이의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이때의 유사성은 사실 관계에 따른 유사성이나 논리적 추론에 의한 유사성이 아니다. 오로지 시인의 개인적 시각에 의해 성립되는 유사성이다.

예컨대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시구를 보자. 흔해 빠진 낙엽과 가치교환의 고유 기능을 상실한 망명정부의 지혜간의 본질적 유사성에 대한 인식으로 촉발된다. 낙엽과 망명정부의 지폐를 등가로 만드는 은유는 "가치 없음"이라고 하는 둘 간의 동질성에 의해 성립된다.

은유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것들에게서 유사함을 찾아내는 데 뛰어나야한다. 은유는 허구적인 것이며 이런시각은 상상력에서 온다. 상상력이란 본질적으로 ~처럼(as)이란 단어 속에 그 의미가 내포되듯 어떤 것에 대한 그 이미지를 ~처럼 보는 것이기 때문이요, 두 사물을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유는 결국 상상력의 산물이다.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관건이란 바로 시인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카타르시스(Katharsis)
아토스는 시의 순기능으로서 카타르시스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플라톤에게는 카타르시스 개념이 없다. 아토스의 학문적 권위에 따라 카타르시스는 미메시스와 함께 예술의 중요 원리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카타르시스가 종교적 의미인지 의학적 의미인지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를 종교적 의미로 보는 입장은 카타르시스가 종교 제식에서 죄의 더러움을 씻고 심신을 깨끗이 하는데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한다. 카타르시스란 일정한 감정을 불순한 것으로부터 꺠끗이 씻어내는 것으로 감정이 과잉에 달하지 않고 적절한 상태로 건강하게 유지되게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순화, 정화, 속죄 등 종교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카타르시스를 의학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입장은 카타르시스를 배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카타르시스를 불필요한 감정의 제거로 이해하는 것이다. 전자는 문제가 되는 특정 감정을 잘 다스리자는 것이고, 후자는 그것을 아예 마음에서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종교적이건 의학적이건 아토스는 연민과 공포의 감정이 비극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했다. 카타르시스가 연민과 공포 감정에 대한 일종의 힐링이라는 것이다. 아토스는 비극은 지적, 사회적 모든 면에서 보통 수준의 사람 이상의 주인공이 악과 죄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숙명과 하마르티아(판단착오,인간이면 누구나 범할 수 있는 과오)에 의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연민과 공포는 쾌감이 아닌 불쾌감이다. 이런 연민과 공포를 그런 감정이 드는 사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환기시킴으로써 해소해버리자는 것이 아토스의 주장이다. 예술은 보편을 모방함으로써 우리에게 사물의 본질을 인식시키는 지적인 작업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어떤 치료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는 시각의 발로다.

전통적인 입장들과 달리 카타르시스를 예술작품의 한 요소로 해석하는 최근의 입장이있다. 한 마디로 카타르시스는 연민과 공포라는 불편한 감정을 즐김의 대상으로 만드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카타르시스를 관객의 반응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상의 문제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아토스의 예술관이 주지주의적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카타르시스를 지적 명료화의 과정으로 보는 특이한 입장도 있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알게 되었을 때 커다란 쾌감을 느낀다. 바로 앎의 쾌감이다. 아토스에 의하면 쾌감은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령 흉측한 벌레의 모습도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면 이를 보는 사람은 재인식의 쾌를 느낀다는 것이다. 앎이란 개별에서 보편을 포착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신고전주의

현실에서 추출한 이상적인 것을 모방할 것을 주문한아토스의 예술론은 현실의 모습을 그리되 실제 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게 그리고자 했던 신고전주의 예술과 잘 맞는다. 신고전주의자들은 아토스의 예술은 자연에 대한 미메시스라는 개념을 적극 수용했는데 그 개념을 처음과는 조금 달리 변형시켰다. 신고전주의자들은 미메시스의 대상이었던 '보편'을 '보편적인 것'(이상적 사실주의)로 바꾸었다.

신고전주의자들은 계몽주의를 따르고 있었으므로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토스에게 보편이란 각각의 종의 가장 이상적인 것. 어떤 개체에 형상이 완벽하게 구현된 완전 현실태를 말하는 것이므로 이상이라는 점에서 지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고전주의에서 모방 대상으로 삼은 보편적인 것이란 현실의 실제적인 것에서 찾아낼 수 있는 전형적이고 특징정이고 본질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관념에서 가능한 보편을 눈앞의 현실에서 찾아낼 수 있는 사태적 보편자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신고전주의의 예술가의 목표는 보편적 자연에 대한 정확한재현이었다.  





이로써 철학아카데미 미학, 서양 철학사 겨울학기와 봄학기가 끝이 났다. 이제 여름학기를 기다리며,, 휴지기에 들어간다.
3g 정도 살찐 나의 서양철학 계보 뇌를 자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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