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쇼펜하우어로부터 의지개념을,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변화생성(becoming)개념을 물려받았다. 불교로부터는 관계론을 영향받았다. 니체 철학은 이렇게 반전통적이고 혁명적이다. 관계론의 반대는 실체론이다. 고전예술은 이성중심 주의, 낭만예술은 감성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 관계론은 기운생동이다. 이것은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이다. 내적 질을 중요시하며 여기의 반대되는 개념이 수적비례를 중시하는 형태의 미가 된다. 형태의 미는 죽은미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합리적이고 이성을 중시하는 서양중심적 사고이며 이는 知를 나타낸다. 반면 기운생동을 나타내는 동양적 사고의 미는 美를 나타낸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니체의 미는 동양적 미다. 이를 생리학적 미라고도 부를 수 있으며 생리학적 미라는 것은 몸의 철학과 연결된다. 니체에게 있어서 감상주의는 힘의 감소를 말하므로 美가 아니라 醜가 된다. 관계론은 상대주의적이다. 관계론이란 A는 B가 있어서 A가 된 것이고 B는 C가 있어 B가 된 것이며 C는 D가 있어 C가 된 것이다. 이를 계속 이어나가면 시작이 없게 된다. 즉,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무종의 상태가 된다. 무시무종은 결국 순환을 말하며 이 순환이란 불교에서 윤회가 되는 것이다. 같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변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다시 윤회하는 것이다.
니체의 사상은 힘에의지, 몸적자아와 관점주의, 영원회귀, 니힐리즘(허무주의), 위버멘쉬, 디오니소스적인 것, 비극적 지혜 등의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니체에게 있어 이 세계는 그 어떤 본래적 질서도 일관된 목적도 또 도덕정 정부도 없다. 이성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태도, 논리적 사고와 합리주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신념 또한 니체는 부정한다. 대신 고정불변의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이성 보다 변화생성을 그대로 수긍하는 몸을 인정한다. 즉, 몸으로 세계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성중심주의적이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뜻과도 연결된다. 니체에게 있어 도덕은 강자가 지배의 수단으로 만들어낸 자의적 기준일 뿐이다. 니체의 철학은 관념론, 형이상학, 이성 우위의 철학 전통에 정명 위배된다는 점에서 유물론이다. 그리고 니체에게 양심이란 인간이 문명화 과정에서 자신의 본능을 억압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정신병에 불과하다.
니체는 의식이란 충동이나 기쁨, 고통처럼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 간접적 소여, 즉 언어를 매개로 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의식이란 한마디로 언어적 파악, 언어적 사고에 동승하며 주체는 이 언어의 문법적 습관에 의해 구성되는 어떤 것일뿐이다. 우리에게 신과 이성을 믿게끔 하고 주체라는 허구를 만들어 내는 가장 핵심적인 언어 형식은 주어-술어의 문법 구조다. 이런 문법에서는 술어가 주어를 전제하게 되고 따라서 주어는 저절로 그 술어의 주체가 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주체를 철학에서 중심주제로 이끌어 낸 것이 데카르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이 한 문장에서 생각하는 나의 주체(이성중심주체)를 등장시키며 근대를 열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신이 내 사고와 내 행동의 이유이자 원인이었기에 호메로스의 일리야스나 오딧세이아에서 많은 문장과 표현들이 신이 누구에게 어떤 행위를 하게했다 라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고대를 구분짓는 나라는 주체를 근대철학에서 주제화 시키는 것이 바로 데카르트이다. 나는 생각한다라는 이 문장에서 니체는 생각한다라는 사건만 존재하지 나라는 주어를 반드시 전제하게 되는 언어적, 문법적 습관 때문에 오류가 생긴다고 비판한다. 예를들어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시험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잡생각이 계속해서 나는 것은 나라는 주체가 의지를 가지고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잡생각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그 사건만 존재할 수 있는데, 데카르트의 끝없는 의심의 결과로 등장 시킨 나는 생각한다라는 이 문장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는 별개의 사건을 꼭 주어를 반드시 전제하는 결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니체가 평가하는 데카르트는 단지 문법적 규칙에 따라 사유행위를 사유의 주체로 환원시키고 사유의 주체를 실존하는 존재로 설정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실체론의 비판이다. 이를 동양과 서양의 대립구조로 구도화 시키면 서양의 실체론은 공간적 사유과 되고 동양의 관계론은 시간적 사유가 된다. 니체는 사상은 그것이 원할때 찾아오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사유라는 과정의 창시자가 아니라 관찰자라는 주장이다.
니체의 니힐리즘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는 것이 니힐리즘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 세상을 애초에 진리나 절대적인 것, 신, 보편 이런 것들이 없는 상태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그 이유는 허탈감 때문이며 바로 여기서 허무주의가 시작된다고 본다. 니체에 의하면 기독교는 허무주의적 사상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원죄성이 있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다. 한마디로 인간성의 소외인 것이다. 위버멘쉬가 가르치는 것은 하나뿐이다. 바로 제발 피안(종교적)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허무주의의 근거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이후 플라톤까지 연결되는 주지주의적 이데아 사상때문)와 기독교적 도덕때문이다. 기독교는 신에 의탁해서 이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수동적 허무주의가 된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신의세계, 배후세계에 대한 부정이다. 니체는 헬레니즘(그리스철학)과 헤브라이즘(중동지역에서 시작한 기독교적 사상)을 전면 부정한다. 니체는 타력신앙(기독교)을 배제하고 자력신앙(불교)을 가까이한다. 니체의 존재론은 영원회귀이고 니체의 인식론은 관점주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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