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체는 형이상학을 배격하고 생생한 대지의 삶이 참된 것이라고 주장
- 전통적인 동일성 철학(Being)에 대한 부정
- 변화생성(Becoming)의 사유를 따르는 니체에게 있어 이 세상은 오직 힘에의 의지만이 영원히 회귀하는 곳이다
- 니체는 데카르트의 주체 개념을 비판한다 (실체론을 부정) / 현대철학이 탈주체로 이동함
- 전통 철학이 배제했던 몸, 감정, 의지를 이성에 선행하는 것으로 간주 함
- 인식은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몸적 조건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봄 (몸은 하나의 큰 이성. 즉, 관점 주의)
- 몸 긍정은 생에 대한 긍정.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긍정을 의미함
- 아폴론적인 것이란 개체화의 원리이며 아폴론은 빛이고 이성을 의미한다
- 디오니소스는 술, 도취, 광란, 파괴의 신이며 힘에의 의지라고 하는 날 것 그대로의 세계에 직면하게 해주는 신이다
- 디오니소스적인것이란 전체와의 동일화 원리를 말함
- 니체는 칸트의 물자체를 부정함. 즉, 해석이나 주관성으로 부터 독립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본질을 사물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가정이라고 보는 것임
- 니체에게 사물들은 성질을 서로 상입함으로써 존재하며, 관계가 존재를 구성한다고 본다
- 아폴론적인 예술충동은 이미지와 관조를 상징하고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충동은 도취를 상징. 전자는 세계와 거리두기, 후자는 세계와 하나되기 이다. 여기서 세계란 힘에의 의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 니체는 조형예술(건축, 회화, 조각 등. 즉, 시각의 대상이 되는 것)과 서사문학을 아폴론적인 예술로 보고, 음악, 무용, 서정시를 디오니소스적인 예술로 본다
- 훌륭한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두 예술충동이 조화되어야 하며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여기에 해당된다
비극의 탄생과 몰락
니체에게 있어 고대 그리스 문화의 정수는 비극이요 고대 그리스 정신의 위대함은 디오니소스적 긍정에 있다. 비(悲)는 우리의 삶 그대로라는 점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고 극(劇)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유의 대상이 되도록 가상화한다는 점에서 아폴론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비와 극이 합해진 것이 아모르파티가 된다. 비극은 삶의 예술화를 통해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비극은 원래 연극이 아니라 합창(Chorus)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비극은 음악에서 탄생한 장르이다. 니체는 비극의 본질을 줄거리와 행위가 아니라 고통. 즉 파토스(감정. pathos)로 간주한다. 합창인 이유는 코레이라의 기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코레이라는 제사장의 주문 + 음율 + 몸짓 이 3가지의 주술적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주문은 문학이 되고 음율은 음악이 되고 몸짓은 무용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삶의 고통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 그것을 끌어안고 사랑하며 즐기려는 (Amor Fati)예술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나타나고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이 등장하며 비극은 몰락해갔다. 등장인물을 늘리고 대사를 비극의 중심으로 삼으며 합창이 주도하던 비극을 말과 대사. 즉 로고스가 주도하는 예술로 변질시킨 것이다. 이것은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이행을 뜻한다. 즉 感에서 知로의 이동인 것이다. 비극의 본질이 이성과 논리적 요소를 통해 변질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퍼트린 합리적 지식의 만능화 경향과 예술조차도 지적으로만 이해하려드는 주지주의는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를 축출했고 비극 정신을 사멸시켰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니체가 볼 때 매우 비그리스적인 인물이다. 과도한 인식욕과 지식으로 절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주지주의. 그리고 죽음까지도 일말의 공포감 없이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성적 인물. 니체게 소크라테스는 괴물같은 존재였다. 아름답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지적이여야 한다라는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 영향을 받은 에우리피데스의 공연만은 소크라테스가 관람했다고 한다. 이런 주지주의와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 윤리적 합리주의로 인해 대지의 생생함은 관념(이데아)의 허상으로 전락했고 이후 기독교는 이런 플라톤 주의를 종교적으로 변형해 노예도덕을 만연시키게 된다.
니체에게 있어 퇴폐란 힘의 감소를 말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에게서 비극정신의 부활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내 염세주의와 예술을 삶의 진정제 정도로만 보는 시각에 실망하고 만다. 니체는 예술을 삶의 진정제가 아니라 자극제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이 데카당스 예술 (퇴폐. 즉, 힘의감소)이라고 판단한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구원을 묘사하는 작품이라고 판단하여 멀어지게 된다. 데카당스 예술은 삶을 끌어안고 사랑하기는 커명 체념에 빠지고 생명감을 고갈시키는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바그너의 음악은 이성중심주의의 완결자인 헤겔적 이념이 표현된 것이라고 진단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니체는 억압받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원래 위치로 복원시키려 한 것이지 아폴론적인것을 폄하하거나 타도나 극복의 대상으로 본 것은 아니다. 디오니소스적인 원시적 힘과 아폴론적인 문명적 절제가 결합된 삶을 니체는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예술은 삶의 자극제
예술은 삶에 대한 긍정을 의미한다. 예술은 천재의 몫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인간 모두가 예술가다. 예술작품은 어떤 진위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세계는 단지 해석의 대상일 뿐이다. 예술은 전통적으로 참된 것으로 여겨져 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단순한 해석 대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정직한 것이다. 예술이란 가장 투명하고 가장 잘 알려져 있는 힘에의 의지의 형태다.
기독교 교리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지 못한다. 그런 삶에는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위대한 긍정이 없다. 예술은 삶의 자극제이고 창조적 삶을 향한 구원자가 된다. 그리고 니체에게 미학은 차이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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